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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 힘을 빼라 물이 힘을 쓰리라’(2015-06-28)

관리자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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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7일 토요일 큐티 말씀에 엘리야 선지자와 사르밧 과부의 만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사르밧 과부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는 중이다. 식량은 바닥이 났다. 아들과 자신을 위해 이제 통에 남아있는 가루 조금과 약간의 기름으로 마지막 식탹을 준비해야 한다. 그 다음은 굶주려 죽는 일만이 있을 것이다. ‘응답이 되었으면 진작 되었지, 이제는 내 의지와 욕망도 내려놓아야 하는가봐.’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들도 이제는 내려놓았다.

이런 상황은 2900년 전 혹독한 기근을 겪은 이스라엘의 가난한 서민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그 시대라면 우리 한반도는 아직 청동기시대요 고조선시대다)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사르밧 과부처럼 참담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으리라. 장사가 어려워져 직원도 내보내고 가족을 동원해서 버티고 있는 불안한 사르밧 과부, 회사 이자를 막다보니 아내의 손에 쥐어줄 돈은 이번 달에도 준비하지 못한 사르밧 과부, 다음 주에 퇴사를 앞둔 사르밧 과부, 유학을 간 자식을 다시 불러들이자고 결정을 내리는 사르밧 과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가족들을 보기가 민망해서 한 달째 집을 나서보는 사르밧 과부...너무 암울한 얘기를 끄집어낸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소식은 항상 기쁜 소식이다. 2900년 전 사르밧 어미에게 기쁜 소식이 있었다. 갑자기 새 날이 왔다. 비워낸 통에 곡물가루가 가득하고 병에는 아침이면 신기하게도 기름이 차오른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뿐이다. 물론 이 시대의 사르밧 과부들에게도 기쁜 소식은 들려져 온다. 모든 최악의 상황들은 하나님의 전공과목이라는 듯, 해결책을 보여주신다. 무엇하나 건질 것이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배운 것은 무엇이었나? “우리 하나님은 답이시다.”였다. 필요를 의식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의식만 하면 답이 왔다. 신분 상승에서 살아갈 땅까지, 물에서 음식과 의복 신발까지,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 해결책을 주셨다. 힘쓰고 애를 써야만 이루고 채워지는 삶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고통받는 수많은 과부들 가운데 왜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해결책을 들고 나타났을까? 분명 마음은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으셨으면서, 손길은 왜 그녀에게로만 향하셨을까? 우선 그녀의 내심을 엿볼 수 있는 말을 살펴보자.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헤엄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살아남는 최선의 해결책은 힘을 빼는 것이다. 그냥 물에 맡기는 것이다. 물이 일하게 하라. 그녀는 이제 모든 힘을 뺐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응답의 물에 자신을 내 맡긴 것이다. 두려움이 다 사라졌다. 죽으면 죽는 것이다. 자신이 죽는 것, 아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이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이것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두려움은 죽음을 빙자하여 그녀를 조종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두렵지 않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고, 엘리야가 나타나 가족의 마지막 음식을 요구했을 때 드러났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17:13) 힘이 아직 덜 빠진 것이다. 자기가 힘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물이 힘을 쓴다. ‘이것만은’ ‘이것이 안 된다면’ ‘이것은 너무 중요해’ ‘이것마저 잃는다면’이라는 마음의 힘을 빼라. 그러면 하늘 창이 열린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게을러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무대 위의 배우처럼 주어진 역할은 계속 감당해내라. 그러면서도 객석에 있는 관객처럼 긴장을 풀고 지켜보라. 하나님의 손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 지를 지켜보라. 순풍이 오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라. 힘을 빼고 신뢰하고 그냥 맡기고 지켜보라. 그분은 그분을 신뢰하여 맡길 줄 아는 자녀들에게 먼저 손을 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