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

담임목사 칼럼

'우리를 웃게 하려고 자녀를 선물로 주셨다'(2015-05-31)

관리자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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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어린이란 단어는 ‘건설자, 곧 미래의 건설자’란 뜻이다. 가정의 미래, 나라와 민족의 미래, 특히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건설하는 건설자란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들은 투자순위 1위로 자녀교육을 선택한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어린 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안고 기도해 주셨다. 아무튼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고 자랑이다. 가정의 꽃이고, 가문의 희망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기업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89세 때, 이미 생물학적으로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18:11), 그저 지친 열망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고 했다. 사람으로선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다.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맘때...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 그런데 사라가 장막 안에서 이 말씀을 듣고 그만 웃고 말았다. 이것은 좋아서 기뻐서 웃은 것이 아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은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서 너무 얼토당토않은 말씀이었기 때문에 웃었다. 아브라함도 그랬다(17:17) 이런 모습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입장, 자기 수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시는 일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래서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가 ‘이삭’이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서 웃었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웃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웃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너무 기뻐서 웃고, 자신에 일어난 일이 너무 놀라워서 웃었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소망했던 자녀를 갖게 되어 기뻤다. 그래서 사라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것은 사라의 찬양이요, 사라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자녀를 통하여 웃게 하시는 분이시다. 자녀는 우리를 웃게 하시려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이다. 이삭은 그의 부모에게 기쁨이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쁨이었다.

 

아내는 나를 향해 가끔 “재미없어, 책만 보고!”라고 한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심심해하던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다. 어제는 우리 부부의 25주년 결혼기념일이었고, 마치 계획을 짠 것처럼 어제 사랑하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입이 종일 귀에 걸렸다. 남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려고 자녀를 주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임과 동시에 우리 부모님들의 자녀이다. 자녀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부모를 항상 즐겁게 하는 것, 부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효(孝)다. 부모가 자식에게 ‘거름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또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몸을 산제물이 되게 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효자(녀)가 되고, 교회에서는 효자(녀)신자가 되는 것, 이것이 건강한 신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