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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아버지에 대한 상처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오버랩된다’(2015-05-03)

관리자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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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산업혁명 이후 아버지의 위상은 줄곧 내리막길을 달려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이후 점차적으로 남자들은 자기의 남자다움의 의미를 가정 밖에서 발견해왔습니다. 남자다움의 가정적인 면은 점점 약화되었고 아버지의 역할을 잘하는 사람보다 개인적인 야망과 성취욕을 품은 사람으로 남자다움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습니다. 가정에서의 아버지 부재로 인해서 어머니와의 시간보내기와 대화가 거의 절대적인 상황은 ‘아버지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 산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고통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거나 존경하지 않아.’라고 확신하는 잠재의식적인 작용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사랑을 주어도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아버지를 마음에서 잃어버린 고아의식(고아의 영)입니다. 고아는 아무리 잘해줘도 상대의 진심을 믿지 못합니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제대로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10대 소년에게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원하신단다.” 그 말을 듣고는 소년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는 것이 아버지예요.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구요? 하나님께 필요없다고 좀 전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와 오버랩이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자체로 만난다기보다는 나에게 있는 ‘내 아버지’ 이미지로 해석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상처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난폭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도 난폭하다고 느낍니다.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자녀는 ‘하나님은 훈육관’이라는 느낌을 항상 받습니다.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들은 하나님을 변덕쟁이로 여기게 됩니다.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하나님을 그렇게 오버랩시켜 원하는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믿지 못해 기도응답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칭찬을 듣지 못하고 따스한 품에 안겨보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경험을 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상처(아버지의 부재를 포함해서)를 어린 시절에 지속적으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왜곡된 하나님 아버지상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고,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의 영혼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셔도 그것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분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에를 들면, 수도국에 아무리 많은 물이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가정에 설치한 파이프라인이 가늘다면 풍성한 공급은 불가능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아버지’ 이미지를 치료받으십시오. 예수님을 마음으로 그리시면서 예수님과 함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왜곡된 기억들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장면을 떠올려 주신다든지, 그 아버지의 상처를 보여주심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새 기억들로 대체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기억’치료입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바꾸어야 할 행동도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아버지 부재에서 아버지 임재로’ 생활 패턴을 바꾸십시오. 자녀가 어머니와만 함께하는 시간 비율을 줄여야 합니다. 남성다움의 정의를 가정 밖에서의 ‘야망 성취’로부터 ‘다시 가정’으로 수정하십시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결정적인 열쇠는 아버지 그대들에게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