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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레바논에서 칼릴 지브란을 만나다(2019-10-20)

관리자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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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사람으로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은 두 사람이다. 첫 번째는 메트릭스로 유명한 헐리웃의 액션배우 ‘키아누 리브스(Kianu Revese)요, 두 번째 인물은 동양의 신비주의를 대변하는 시인 중 하나인 칼릴 지브란이다.

그리스도인이 레바논에 가게 될 때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해발 1600km 이상에서만 자란다는 레바논 삼나무 숲이다. 성경에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그 백향목이 자라고 있는 지역에 칼릴 지브란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었다. 백향목을 보게 해준다던 선교사님의 말을 듣고 틈을 내 따라 나섰는데, 그 길목에서 칼릴 지브란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1920년대에 쓴 그의 산문시집 <예언자>를 좋아해서 신학교 시절에 문학 과목에서 감상문을 써낸 기억이 있다. 천 페이지의 소설도 하루면 정독으로 충분하게 다 읽어내는데, 이 얇은 시집 한 권을 읽는 데는 일 주일도 열흘도 넘게 걸린다. 소설은 풀어내 만든 이야기이지만 시는 다듬어진 언어의 정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긴 글들은 여백을 채우기 급급할 때, 시는 오히려 여백을 만들어 낸다. 특별히 중간 중간 삽화를 곁들인 140쪽 분량의 <예언자>는 그의 삶에 대한 지혜와 직관적인 통찰이 두드러지는 대표 시집이다. 단 한 장, 한 줄의 싯구도 쉽게 읽어내고 건너뛸 수 없게 만든다. 소위 명상, 직관과 통찰, 신비주의를 대변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시인 두 명을 선택한다면 인도의 타고르와 레바논의 칼릴 지브란일 터이다. 그런데 문학적 성향과 성취가 엇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 중 타고르는 노벨상을 타고 지브란은 타지 못한 까닭이 뭘까 싶다. 어쩌면 문학 세계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지형 탓이었을지 모른다.

페니키아 문명의 중심이었던 레바논 산지의 계곡 앞에서 그가 매일 바라보며 시어들을 이끌어내었을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다 베이루트로 돌아왔다. 생각지 못했던 수확을 얻고 돌아오며 <예언자>의 경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예언자 ‘알무스 타파’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항구를 떠나기 전 가상의 도시 오르팰리스에 사는 각양각색의 주민들은 그에게 다양한 주제의 인생 조언을 구한다. 사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한 번은 고민해 보았을 법한 주제에 대한 물음과 답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누군가가 ‘일에 대하여’ 알무스 타파에게 질문했고 그에 대해 대답하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그대 만일 괴로운 나머지 태어남을 고통이라 하고

육체를 먹여 살리는 일을 자신의 이마에 씌어진 저주라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대답하리라.

오직 그대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그곳에 씌어 있는 저주를 씻어줄 것이라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많은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스스로 찾아가야 하겠지만, 알무스 타파는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 외에도 떠오르는 싯구들이 있다.

“그대 허공의 아들아, 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는

덫에 걸리지도 말고 길들여지지도 말라.”

“이성이란 홀로 다스리게 하면 경직된 힘이며,

감정이란 홀로 내버려 두면 스스로를 태워 파괴하는 불꽃...”

“그대 만일 날마다 일어나는 삶의 기적들을 가슴속에 경이로움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고통도 기쁨처럼 경이롭게 바라볼 것을...”

 

그대가 레바논에 간다면 반드시 백향목 숲 언덕에서 칼릴 지브란을 만나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