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짤막한 민화를 통해 두 종류의 구원신학을 이야기 한다.
한 소년이 눈 덮인 벌판을 달리다가 그만 늪에 빠졌다. 나오려고 움직일수록 몸은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다. 마침 그곳을 한 행인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았다. 행인이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소년은 스스로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행인의 호의를 거절했다. 행인은 가던 길을 재촉했고, 소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머리만 남겨두고 온 몸이 늪 속에 잠겼다. 다급해진 소년은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스스로 자기 몸을 끌어올리겠다고 자기 머리채를 잡아당겨보았다. 모두 헛수고였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력구원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자력구원은 늪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몸을 끌어올리겠다고 자기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반면 늪 밖에 있는 사람만이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밖에 사람이 있을 때! 구원은 오직 다른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은 자기 행위가 아니라 은혜다. 그리고 그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고후6:2).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에서 파생한 종파들이 많다. 그렇지만 본질에 접근하면 결국 두 종류의 종교만 남게 된다. 하나는 ‘행위’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종교다. 모든 종교의 궁극은 구원인데, 행위종교는 그 구원을 자기 행위로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선을 행할 수 있는 선한 의지가 있고, 그 의지로 인한 선행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자력구원’(自力救援)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자력구원을 강조하는 행위종교다.
반면 성경은 밝히 말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Total Depravity)했고, 죄의 세력에 불가항력(resistless)이어서 온전한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니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다른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외부로부터,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타력구원’(他力救援)이다. 인간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가 아닌 ‘예수님이 넘겨주시는 의’를 통한 구원이다(롬3:20,21). 이렇게 자기 행위(능력이나 노력, 선행 등)가 아닌 예수님을 통해서 거저 받은 것이기에 ‘은혜(선물)’라고 한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가 사람의 희망이다.
톨스토이는 짤막한 민화를 통해 두 종류의 구원신학을 이야기 한다.
한 소년이 눈 덮인 벌판을 달리다가 그만 늪에 빠졌다. 나오려고 움직일수록 몸은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다. 마침 그곳을 한 행인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았다. 행인이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소년은 스스로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행인의 호의를 거절했다. 행인은 가던 길을 재촉했고, 소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머리만 남겨두고 온 몸이 늪 속에 잠겼다. 다급해진 소년은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스스로 자기 몸을 끌어올리겠다고 자기 머리채를 잡아당겨보았다. 모두 헛수고였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력구원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자력구원은 늪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몸을 끌어올리겠다고 자기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반면 늪 밖에 있는 사람만이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밖에 사람이 있을 때! 구원은 오직 다른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은 자기 행위가 아니라 은혜다. 그리고 그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고후6:2).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에서 파생한 종파들이 많다. 그렇지만 본질에 접근하면 결국 두 종류의 종교만 남게 된다. 하나는 ‘행위’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종교다. 모든 종교의 궁극은 구원인데, 행위종교는 그 구원을 자기 행위로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선을 행할 수 있는 선한 의지가 있고, 그 의지로 인한 선행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자력구원’(自力救援)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자력구원을 강조하는 행위종교다.
반면 성경은 밝히 말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Total Depravity)했고, 죄의 세력에 불가항력(resistless)이어서 온전한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니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다른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외부로부터,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타력구원’(他力救援)이다. 인간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가 아닌 ‘예수님이 넘겨주시는 의’를 통한 구원이다(롬3:20,21). 이렇게 자기 행위(능력이나 노력, 선행 등)가 아닌 예수님을 통해서 거저 받은 것이기에 ‘은혜(선물)’라고 한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가 사람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