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이웃을 행복하게
세상을 하나님 볼 수 있게
조물주께서는 모든 생명들을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말씀한다.
강력한 정복자였던 로마 황체는 자신이 차지한 식민지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그 동상은 황제를 대표했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지구라는 행성에 세워진 동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은 나의 소유다!”라고 선포하는 셈이다. 동상이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총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총독은 오직 황제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고 로마의 위엄을 나타내야 한다. 그것이 존재 목적이다. 성경에서 밝히는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목적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부르심은 이 목적을 회복하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형상이 우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래 형상과 우상은 ‘첼렘’이라는 같은 근원의 히브리 단어를 사용한다. 왜일까?
형상은 내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상은 신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안에 형상을 잃어버리면 내 안에 우상이 자리 잡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는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고 또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는다. 마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시는 것처럼 군다.
그래서 이 부분을 명백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산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 하면 행복해진다. 하나님의 형상들이여, 이것을 알자. 나의 행복이 목적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이다. 참다운 행복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한 삶의 결과물로서 나타난다.
객차가 기관차를 끌지 않는다. 그대가 기관차가 객차를 끄는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행복도 견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나의 행복이 목적이 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행복을 목표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양 살고 있다면, 나는 진짜 행복을 놓치고 사는 셈이다.
형상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상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안에 우상이 사라지면 내 안에 형상이 나타난다. 그러니 예수의 종 된 성도들이여,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이웃을 행복하게
세상을 하나님 볼 수 있게
조물주께서는 모든 생명들을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말씀한다.
강력한 정복자였던 로마 황체는 자신이 차지한 식민지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그 동상은 황제를 대표했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지구라는 행성에 세워진 동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은 나의 소유다!”라고 선포하는 셈이다. 동상이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총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총독은 오직 황제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고 로마의 위엄을 나타내야 한다. 그것이 존재 목적이다. 성경에서 밝히는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목적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부르심은 이 목적을 회복하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형상이 우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래 형상과 우상은 ‘첼렘’이라는 같은 근원의 히브리 단어를 사용한다. 왜일까?
형상은 내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상은 신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안에 형상을 잃어버리면 내 안에 우상이 자리 잡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는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고 또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는다. 마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시는 것처럼 군다.
그래서 이 부분을 명백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산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 하면 행복해진다. 하나님의 형상들이여, 이것을 알자. 나의 행복이 목적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이다. 참다운 행복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한 삶의 결과물로서 나타난다.
객차가 기관차를 끌지 않는다. 그대가 기관차가 객차를 끄는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행복도 견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나의 행복이 목적이 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행복을 목표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양 살고 있다면, 나는 진짜 행복을 놓치고 사는 셈이다.
형상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상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안에 우상이 사라지면 내 안에 형상이 나타난다. 그러니 예수의 종 된 성도들이여,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